기대감과 아쉬움
절이 다 거기서 거기지. 아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등사를 대충 훑어보니 여느 절과 비슷했다. 강아지를 안고 아내와 함께 한 바퀴만 휘익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갈 채비를 했다. 전등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삼랑성을 지나갈 때 문득 떠올랐다. 전등사 안으로 들어올 때의 기대감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우리 부부는 단지 전등사의 겉모습만 눈으로 담고 카메라로 담아왔나 보다. 전등사 밖으로 나오면서 이내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전등사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푸릇푸릇해지면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와 함께 하루산책
[ 강화도 전등사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매일 하절기 08:00~18:30
매일 동절기 08:00~18:00
☎ 032-937-0125
▲ 전등사 주변에는 주차장(소형 2,000원, 대형 4,000원 선불)도 많고 식당도 많다.
▲ 전등사 가는 길
▲ 전등사 가는 길목에도 식당이 많다.
▲ 전등사 매표소
▲ 동의서를 작성한 후에 반려동물과 함께 전등사에 출입이 가능하다.
▲ 문화재구역 입장료 안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는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전등사 주변은 사적 130호인 삼랑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보물 5점, 시 지정 문화재 14점이 전등사 문화재 구역에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한 유서 깊은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설의 나부상, 열매가 열리지 않은 은행나무,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 주엽나무, 엄마, 왕소사나무, 단풍나무, 노송 군락지와 같은 다양한 수목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어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 삼랑성 안내
삼랑성은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겨져있다. 초기 삼랑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로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삼랑성 안에는 가궐(고려시대), 사고와 선원보각(조선시대)이 있었고 지금은 전등사만 남아있다. 병인양요(1866) 당시에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 삼랑성 앞에서 인증샷
▲ 양헌수 승전비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로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고 새겨져 있다. 양헌수 장군은 헌종 14년(1848년)에 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지내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가 181cm, 비신의 높이가 163cm, 너비 60cm, 두께가 27cm이다.
▲ 양헌수 승전비는 삼랑성 동문 오른쪽에 있다.
▲ 전등사 윤장대
▲ 전등사 윤장대는 고정되어 있다.
▲ 죽림다원
▲ 정월대보름 행사로 대웅전 앞에 알록달록한 연등이 매달려있다.
▲ 전등사 템플스테이 http://www.jeondeungsa.org/bbs/board.php?bo_table=menu0404
▲ 소원지 쓰기
▲ 한지에 새해소원을 써서 직접 달아두면 정월대보름에 소지한다.
▲ 범종과 법고
▲ 목어
▲ 불교대학 수강생 모집에 불기(2563년)로 적혀있는 점이 특이했다.
▲ 삼랑성을 지나가는데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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